『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숙종 때의 유이태는 거창군 위천면 출신으로 의술에 통달하였다. 여우로부터 얻게 된 구슬을 매개물로 명의가 된 후, 병을 해결하는 신의(神醫)에 가까운 의료담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유이태의 의료담에 얽힌 효행 설화는 효행과 정성이 의술 이상의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당대 사회 규범을 반영하는 효 사상을 일깨워 주고 있다.
내용
유이태(劉爾泰)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사마리[지금의 거창군 위천면 장기리 위천 중학교 자리]에서 태어났다. 유이태가 수승대 어귀에 있는 서당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밤마다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 유이태를 유혹하였는데, 그때마다 유이태는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더욱 전념하였다.
어느 달 밝은 밤,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여 수승대에 올라 달을 보고 있는데, 또 그 아가씨가 나타나 단 한 번의 입맞춤이라도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간절한 청을 거절할 수 없어 유이태는 그녀에게 입맞춤을 했다. 유이태가 입맞춤을 하며 신비로운 향기에 도취되어 있는데, 그녀의 혀끝에서 감미로운 구슬이 굴러들어 왔다 다시 그녀의 입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렇게 두 사람의 입으로 구슬이 오가는 긴 입맞춤 끝에 그녀는 작별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이 같은 일이 날마다 계속되자 유이태는 밤이 되면 그녀를 자연스럽게 그리워하게 되었다. 유이태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몸이 야위자 이상하게 생각한 서당 훈장이 유이태에게 사연을 물었다. 유이태는 훈장에게 숨기지 않고 그간의 일을 순순히 고백했다. 유이태의 말을 들은 훈장은 생각 끝에 "그 구슬이 너의 입에 굴러들 때 삼켜라." 하였다. 그날 밤도 아가씨가 유이태를 찾아왔는데, 입맞춤을 하는 순간 스승의 말을 떠올린 유이태는 자신의 입안으로 굴러들어온 구슬을 꿀꺽 삼켜 버렸다. 그러자 아가씨가 비명을 지르더니 순식간에 한 마리의 흰 여우가 되어 달아났다.유이태가 훈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훈장이 유이태에게 뒷간에서 일을 본 뒤 그 구슬이 나오면 소중히 간직하라 하였다. 구슬을 얻은 날부터 아가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유이태의 몸도 점차 회복되었다. 이상한 것은 그 뒤 유이태의 총기가 비상하게 늘었다는 것이다. 한 번 듣거나 본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천재가 되었다. 그때부터 유이태는 의서를 열심히 공부하여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마침내 국왕의 병환에 부름을 받았을 정도였다. 지금 위천 중학교 뒤편 언덕에 뱀 입안에 꽂힌 비녀를 빼 주고 그 뱀으로부터 사침을 받았다는 ‘침대롱 바위’가 남아 있다.
유이태의 의술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전승되고 있는데, 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이태의 의술은 너무나 신기하여 무슨 병이든 유이태가 약이라고 집어 주면 그것이 바로 약이 되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낙태를 한 후 약을 지으러 와서 용건을 고했다. 마침 바둑을 두고 있던 유이태는 바둑돌 하나를 집어 주며 삶아서 그 물을 마시라고 했다. 반신반의하며 돌아온 부인은 바둑돌을 삶아 그 물을 마셨더니 과연 몸이 가뿐해지고 병도 깨끗이 치료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전라도에 사는 한 남자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병구완을 했는데, 백약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경상도 땅의 명의 유이태에 관한 소문을 들은 남자는 오뉴월에 어머니를 업고 육십령재를 넘어서 찾아왔다. 환자를 진맥한 유이태는 약도 주지 않고 다시 그대로 업고 가라고 했다. 남자는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하겠으니 그 방도를 알려 달라고 다시 애원했다. 그러나 유이태는 이 병에는 나을 약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고는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자는 괘씸하다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어 어머니를 업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육십령 고개를 오르는데 등에 업힌 늙은 어머니가 목이 마르다며 물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남자는 어머니를 내려놓고 사방에서 물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험한 산골짜기를 뒤지며 물을 찾던 중, 어느 바위 밑에 밥그릇만 한 그릇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깨끗하지는 않았으나 우선 어머니의 갈증을 풀어 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 물을 가져다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가 물을 쭉 마시고는 "이 물이 무슨 물이냐? 마시고 나니 속이 시원하고 통증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으니 이상하구나."라고 말했다. 과연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의 병은 깨끗이 완치가 되었다.
그런 후, 남자는 유이태의 처사가 몹시 괘씸하다 여겨 다시 유이태를 찾아가서 따졌다. "전일 내가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왔을 때 선생은 약이 없다고 하면서 도저히 나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어머니의 병이 깨끗이 치유되었습니다. 선생의 의술은 사술이 아닌지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유이태가 빙긋이 웃으며 "그 병에 대한 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구할 수가 없기에 약이 없다고 한 것이오. 그 약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늘이 낸 효자, 즉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람뿐이오."라고 했다. "도대체 어떤 약인데 그렇단 말이오?" 하고 다시 물으니, "천년두에 만년수라는 약인데, 천 년을 묵은 죽은 사람의 해골에 만 년이 되도록 고여 있는 물이 바로 그 약이오. 수백 년 동안 해골 안에 고여 있는 물을 마셔야 낫는 병이기에 그 약을 일러 주지 못한 거요. 그런 약을 어떻게 구할 수 있단 말이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이태의 말을 듣고 남자는 육십령재에서 생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유이태는 무릎을 치며 "바로 그 밥그릇이 해골이며, 그 물이 해골 속에 고인 물이오." 하면서 "당신은 하늘이 낸 효자이며 하늘이 당신의 효심에 감복하여 당신을 도와준 것이오."라고 했다.
모티프 분석
유이태 설화는 현전하는 구비 설화 중 이름이 명확히 명시된 명의 설화다. 명의 유이태의 출현 이야기, 병을 치료한 신의(神醫)의 치료담, 의술보다 효가 병 치료에 선행한다는 효행 설화 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의료 설화는 ‘득병’이라는 절망적인 현실을 벗어나고픈 인간 심리가 반영된 치유 모티프로 볼 수 있다. 거창 외에도 명의 유이태 설화가 80여 편이나 전해진다는 사실은 명의의 출현을 기다리는 민중의 마음속에 거창 출신의 유이태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말해 준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20년 이상 산 사람이라면 허준을 모르는 이 없고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를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라면 제목 아니면 본문에 나타난 이름 두 개가 다름을 알아챘으리라.
1975년 이은성이 극본을 쓴 MBC 드라마 <집념>(허준 역 김무생, 유의태 역 이순재)이나 영화 <집념>(허준 역 이순재, 유의태 역 김인태), 그리고 1991년 MBC 월화드라마 <동의보감>(허준 역 서인석, 유의태 역 이순재)혹은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방송된 역시 MBC 드라마 <허준>(허준 역 전광열, 유의태 역 이순재)에 이어 또 역시 2013년 MBC 드라마 <구암 허준>(허준 역 김주혁, 유의태 역 백윤식)에 이르기까지 동의보감의 주인공 ‘허준’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계속 재생산되어왔다.
이은성은 드라마와 영화 <집념>의 성공을 계기로 이를 소설화(소설 동의보감)했고 다시 MBC는 소설을 바탕으로 드라마화 했다. 드라마로 재생산될 때마다 허준의 이야기는 공전의 히트를 쳤고 마침내 2013년 <구암 허준>에 이르러서는 1세대 허준이었던 고 김무생 배우의 아들인 김주혁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허준 역을 맡는 일화까지 생겼다.
명의 유이태가 어렸을 때 살았다는 집과 일부 주민들에게 침대롱바위로 알려진 바위. 어쨌든 이은성의 작품 영향으로 대한민국의 갑남을녀는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유의태는 가상의 인물이다. 지금 산청 동의보감촌에선 그 유의태를 실존했던 인물로 스토리텔링화하고 있지만 묘하게도 이름이 아주 유사한 유이태라는 인물이 실존했다는 사실이 작금 논란이 되고 있다.
허준(1539~1615)은 조선 13~15대 임금인 명종~광해군 때의 사람이고 유이태(1652~1715)는 조선 후기 19대 임금인 숙종의 어의를 지낸 인물이다. 그러니 살았던 시기는 서로 다른 세상이었다. 그것도 허준이 시대적으로 훨씬 앞선 인물이다. 그러니 유의태는 이름과 상황이 비슷한 유이태를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개명을 하고 가상의 인물로 그려졌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유이태의 후손 입장에서 보면 실존 인물 유이태가 가상 인물 유의태로 잘못 알려지는 처지라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겠다. 유이태의 후손들은 지난 5월 산청군에 ‘유의태’로 되어 있는 이름을 ‘유이태’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유이태는 거창군 위천면 위천중학교 인근 사마마을에서 태어났다. 유이태는 천연두와 홍역 등의 병에 깊은 연구를 하여 의학전문서인 <마진편(痲疹篇)>을 썼다.
어의로 숙종의 심각한 병을 고치어 신임을 받았고 나중에는 안산군수로 임명되었으나 부임을 고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전념을 다했다고 한다. 유이태는 거창에서 태어났지만 외가인 산청에서 의술활동을 펼쳤다.
어의까지 지낸 인물이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 시골로 돌아와 의술활동을 펼쳤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히 수많은 일화와 전설까지 얻지 않았나 싶다.
유이태는 어렸을 때부터 침을 가지고 노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유이태에 얽힌 수많은 전설 가운데 침대롱 바위가 있는데, 이는 유이태가 침대롱을 놓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침대롱이란 침을 넣어두는 대통이다. 지금에야 위생상 침대롱에다 침을 보관하는 한의사가 있기야 하겠나만 조선시대 당시만 하더라도 보관의 편리성을 위해 가느다란 대나무통, 즉 대롱에 침을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하곤 했다.
이 침대롱바위는 유이태가 태어났다는 집에서 가깝다. 위천중학교 옆 사마마을 입구에 있다. 이 마을에서 전 부녀회장을 지냈다는 소순자(75) 씨를 만났다. 그의 증언을 들어보자.
위천중학교 옆 사마마을 입구. 원 안이 침대롱바위.
침대롱바위 가까이 다가가 아래서 위로 향해 본 모습.
침대롱바위 수평 앵글.
위에 올라가 내려다 본 모습. “저기 보이는 저 기와집이 옛날에 유이태가 살던 집이라 캐요. 기와집은 지금 사는 사람이 새로 지었지만도 저~서 살았다 캐. 그라고 그 앞에 있는 저 바구가 침대롱바위라 캐요. 그런데 전에 엠비씬가 방송국에서 와서는 요 삐알(비탈)에 있는 저 바구를 찍어가데.”
소 여사가 가리킨 쪽을 바라봤다. 묘하게 생긴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침대처럼 생겼다. 침대롱과 침대, 물론 유사한 발음이지만 전혀 다른 물건이다. 하지만 특이하게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침대처럼 생긴 바위가 유이태 전설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근처에 거창의 유명한 관광지인 수승대가 있다. 여름이면 국제연극제가 열리는 곳으로도 세계에 알려져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피서와 문화를 동시에 즐기기도 하는 곳이다.
이 인근에 유이태가 어렸을 적에 여우와 사랑에 빠졌다는 전설이 스민 바위가 있다. ‘이태사랑바위’다. 위천천이 ㄱ자로 꺾여 돌아가는 모서리에 있는 데다 바위가 꽤 높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예부터 수많은 풍류객이 머물다 간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을 다른 말로 ‘척수대’라고도 부른다.
유이태가 태어난 사마마을에서 수승대로 가다 보면 수승대 관광지 입구 바로 못 가서 왼쪽에 ‘이태사랑바위’가 있다. 들어서는 입구에 작은 안내판이 있다.
‘백여우와 사랑에 빠진 유이태의 전설, 척수대. 이태사랑바위’라고 제목이 적혀있다. ‘척수대’란 이름이 붙은 연유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사신이 오가며 이곳에서 근심을 씻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암튼,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은 스토리가 제법 재미있다.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본다.
조선 숙종 때에 유이태(劉以泰)라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그는 위천면 서마리(이후 갈전리 사마마을)에서 태어난 거창 사람으로 그가 지금 수승대 어귀에 있는 어나리 서당에서 글공부를 할 때의 일이다.
수승대 관광지 안으로 들어가 본 팻말과 이태사랑바위.
망원렌즈로 조금 당겨 본 모습.
250밀리 망원렌즈로 완전히 당겨 본 모습.
위천천 갈대와 어우러진 이태사랑바위. 유이태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으려면 밤마다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서 유혹하여 그럴 때마다 그는 마음을 굳게 해 독서에 더욱 전념하였는데, 어느 달 밝은 밤에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여 수승대에 올라 중천의 달을 보고 있는데 또 그 아가씨가 나타나 단 한 번만 입맞춤이라도 하여 달라고 애원하니 그는 그녀의 간절한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단 한 번만 입맞춤하기로 하였다.
그녀와의 접촉에서 더할 수 없는 황홀감과 달콤함을 실감하고 신비로운 향기에 도취해 있는데 그녀의 혀끝에서 감미로운 구슬이 굴러들어와 형용하기 어려운 쾌감에 젖을 때면 구슬은 다시 그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고 이렇게 두 사람의 입으로 구슬이 오감을 거듭하는 동안 긴 애무 끝에 그녀는 작별을 고하고 사라졌다.
이 같은 일이 연일 계속되어 유이태는 밤이면 그녀를 그리워하게 되고, 이러한 밤이 수십일 계속 되는 동안 유이태의 안색은 점점 창백하지고 몸은 야위어 갔다. 이상하게 생각한 서당 훈장은 그에게 사연을 물으니 자신의 쇠약을 근심하던 그는 그 사유를 순순히 고했다. 고백을 들은 훈장은 심사숙고한 끝에 “그 구슬이 너의 입에 들어올 때 삼켜라.” 하고 일렀다.
그날 밤에도 예외 없이 두 남녀의 밀회는 계속 되고 있었다. 문득 스승의 말씀이 떠올라 몇 번인가 굴러들어온 구슬을 눈을 딱 감고 꿀꺽 삼켰더니 웬일인지 그렇게 아름다웠던 아가씨는 순식간에 비명을 지르면서 한 마리의 흰 여우가 되어 달아나는 것이었다.
훈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다음 날 뒷간에서 그 구슬을 찾아와 소중히 간직하라고 하였다. 구슬을 얻은 날부터 아가씨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그의 몸도 완연히 회복되었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유이태의 총명이 비상하게 늘었다는 것이다.
한 번 듣거나 본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천재가 되었고 이때에 그는 의서를 열심히 공부하여 의술의 대가로서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되어 마침내 국왕의 병환에 부름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태사랑바위로 들어가는 길.
이태사랑바위 끝자락.
발아래로 절벽이다.
멀리 금원산 능선에 운무가 덮여있다. 그러나 그의 보배인 구슬이 온데간데없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구슬을 잃고 난 뒤부터는 그도 평범한 재주밖에 없게 되었고 기억력도 줄어서 마침내는 건망증까지 걸렸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의 며느리가 감기몸살에 걸렸는데 콩나물을 달여 먹이려던 것이 콩나물을 잊어버리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떠오르지 않아 ‘비녀나물 비녀나물’이라고 하다가 며느리를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